묘(猫)한 사이
“이봐요, 지훈 대리님.”
그러니까 내가 왜 지금 이 새빨개진 사람이랑 실랑이를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약 두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반년을 공들인 거대한 프로젝트가 겨우 끝나자마자 미친(n) 부장님은 회식 소리를 해댔다. 회사의 노예인 부장님의 노예인 나는 다크서클이 발등까지 내려온 채로 회식 장소를 골라서 부장님께 보고해야만 했다. 젠장. 오늘은 진짜 많이 마시면 하늘나라 행이다. 나대지 말아야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반죽상인 나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은 부장님밖에 없었다. 자의로 마시지 않으니 평소와 달리 술을 콸콸 들이붓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내가 기를 쓰고 술을 피하는 사이에 이 사람은 평소와 달리 술을 콸콸 들이부었나 보다. 그것도 아주 마아아않이.
1차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갈 무렵, 부장님 포함 2차 갈 사람들을 챙기는 팀장님께 오늘은 이만 들어가 봐도 되겠냐고 넌지시 물었다. 오늘따라 영 분위기를 못 맞추던 내가 신경 쓰이긴 했는지 그러라는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부장님 몰래 빠져나가라는 꿀팁 한 스쿱 더해서. 아 역시 승철 팀장님이 최고야.
“아 정한 대리, 그 대신 부탁 하나만 하자.”
그때의 난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집에 보내주신다는데 뭘 못 하겠어요!
“지훈 대리 좀 챙겨줘. 오늘따라 과음하던데. 이참에 화해도 하면 좋고.”
엥. 이게 뭔 소리지, 최승철 팀장님? 집도, 술버릇도 모르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챙겨. 아니 그리고 화해는 무슨 화해. 애초에 싸운 적이 없다고. 쟤가 그냥 나 피하는 거라고! 아, 택시 타고 튀어서 바로 침대에 다이빙하고 싶었는데. 절로 이가 깍 깨물린다.
“므라는그야, 체슨철. 말이 대?”
“ㅎㅎ 정한아 고맙다. 그래도 담엔 성 떼고 불러라. 이번만 봐준다~”
봐주긴 뭘 봐준다는 거야. 어색한 사람 하나 떨구고 가는 게 어떻게 봐주는 거야. 나쁜 최승철. 저거 저거 지가 충분히 챙겨서 집 보낼 수 있으면서 일부러 저러는 거다. 화해하라고. 근데 진짜 맹세코 난 이지훈 대리랑 싸운 적이 없다.
이직 시기도 비슷했고 나이 차이도 한 살밖에 안 난다길래 내가 먼저 친해지려고 다가갔었다. 지금까지 남녀노소 웬만해서 친해지기 어려운 경우는 없었는데 (자랑은 아니고) 이게 웬일. 낯가리는 길고양이에게 냥냥펀치 당한 것 마냥 튕겨져 버렸다. 나도 어지간히 낯가리는 거 겨우 용기 내서 다가갔더니만 슬슬 피하기나 하고. 업무 이외로 나눠본 대화라곤 좋은 아침이에요, 수고하세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 세 개가 전부다. 더 서운한 건 나한테만 그 묘한 선을 그었다는 거다. 언젠가 탕비실 입구에서 다른 직원들이랑 살짝 웃으면서 이런저런 사적인 얘기하는 걸 들었던 날에는 왠지 모르게 문 열고 들어갈 용기가 안 나서 커피도 못 마셨다. 원래 프랜차이즈 커피보다 탕비실 믹스 커피를 더 좋아하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입안이 써서 그랬다.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자꾸 뾰족해지는 마음이 낯설었다.
이런 상황이 1년이 훌쩍 넘어가는데도 나와 이지훈 대리의 묘한 거리감은 여전했다. 오죽하면 최승철이 너네 싸웠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그렇지만 난 이유를 모르니 최승철의 질문에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니 생각하다 보니 열 받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설령 내가 뭔가를 잘못했더라도, 설명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피로에 술기운까지 올라서 그런지 얼굴에 열이 확 뻗쳤다. 머리에 뻗친 건가. 아무튼 그래서인지 체력과 함께 자제력이 숭숭 빠져나갔다. 술도 깨고 이지훈 대리와의 벽도 깰 겸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저 분홍 꿀떡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 왜 이렇게 멀어, 하필 끝과 끝자리에 앉아서는. 이게 꼭 나와 이지훈 대리 사이의 거리감 같았다.
한세월이 걸려서 겨우 옆자리에 도착했다. 불편해 보이는 앞치마를 벗겨 대충 옆에 던져두고 이지훈 대리의 팔뚝을 툭툭 쳤다. 오 단단해. 아 이게 아니고.
“이봐요, 지훈 대리님.”
“.......”
“정신 좀 차려봐요. 나 누군지 알겠어요?”
“...정한, 대리님.”
다행히도 아예 필름이 나간 건 아닌가 보다. 잘 달래서 나한테 왜 그러는지 물어보고, 집 주소 물어보고, 얼른 집에 보내야겠다.
“나 왜 싫어해요?”
“...예?”
음 너무 세게 말했나. 열 뻗친 게 아직 안 가셔서 그만.
“저 정한 대리님... 안 싫어합니다.”
“네? 그럼 왜 나한테만 선 그어요?”
느리게 깜박거리는 눈이 마주쳤다.
“그야, 정한 대리님이...”
“네, 제가요.”
“예뻐서.......”
...네에? 이지훈 대리는 폭탄을 던져 놓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와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 분명 술 좀만 마셨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막 헛것이 들리네. 이건 무슨, 고백같잖아...!
.
.
.
쫑긋.
와 잠만, 나 진짜 취했나. 이지훈 대리 새까만 머리 위에 저 하얀 거 뭐지...? 고양이 귀? 이제 헛것이 보이기도 하다니. 상태가 꽤나 심각한 것 같아서 물 한 잔 마시고, 눈도 비비고, 뺨도 두어 번 때려봤다. 그래도 여전히 하얀색 고양이 귀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지훈 대리가 깨어나지도 않았다. 아 집 주소 못 물어봤는데 어떡하지. 걱정이 앞서고 있는 머릿속과 달리 내 오른손은 하얀색 귀를 향해 앞섰다.
말랑.
술이 확 깨는 기분이다. 이건, 이건 진짜다. 헛것이 아니라 진짜 고양이 귀였다. 일단 가려줘야 하나 싶어서 옆에 던져뒀던 앞치마를 머리에 덮어줬다. 폭탄 발언과 치명적인(?) 모습이 연타로 몰아치니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와, 고양이, 어쩐지.
작년 워크숍이었나. 멸치 우려낸 국물 없으면 해장을 못 하시는 우리 부장님(^^) 때문에 마른 멸치 한 봉지를 카트에 넣었었다. 나와 같이 장보기 조였던 이지훈 대리는 조용히 한 봉지 더 넣어도 되냐고 물었고 난 별생각 없이 그러라 했다. (이때도 대화다운 대화는 이게 다였다.) 그랬더니 남들 다 고기 먹고 과자 먹을 때 이지훈 대리는 고기 먹고 멸치 먹었다. 하루 종일, 한 봉지 다 생으로. 참 별나다 싶었는데 고양이여서 그랬었나 보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뻗어나가는 중에 옆에 있던 꽤 커다랬던 덩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줄 알았는데 줄어든 거였다. 술기운에 못 이긴 건지 결국 하얀 솜뭉치로 변해버렸다, 이지훈 대리가. 와. 미쳤네. 그래도 앞치마랑 옷들에 파묻힌 모습은 좀 웃겼다. 평소에는 ㅡㅡ. 이렇게 생겨서 무뚝뚝하기나 했는데 고양이 모습은 꽤나 귀여웠다.
그것도 잠시, 이 사람을, 아니 이 고양이를 어쩌지 싶었다. 사람일 때는 하도 괘씸해서 그냥 두고 가버릴까 살짝 고민했는데.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우선 집으로 데려가야겠다. 자세한 건 내일 술 깨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택시를 불렀다. 이 와중에 작은 고양이랑 옷가지 몇 개만 챙기면 돼서 편하다는 생각도 좀 했다.
묘(猫)한 사이
지이잉. 지이잉. 웬 진동 소리가 단잠을 깨웠다. 멸치 세 마리랑 술래잡기 하는 평소답지 않게 귀여운 꿈이 은근 재밌어서 깨기 아쉬웠는데. 눈도 못 뜬 채 잔뜩 굳어있는 몸을 쭉 폈다. 앞다리도, 뒷다리도, 발가락도. 잠만, 앞다리? 눈이 팍 떠졌다. 그리고 내려다본 곳에는 길게 뻗은 사람 손가락이 아니라 짧고 동그란 고양이 발이 있었다.
와 큰일 났다. 어제 일이 뭉게뭉게 기억이 날랑 말랑 했다. 왠지 좀 답답한 마음에 오랜만에 회식도 가고, 주는 대로 술도 받아 마신 것까지는 어느 정도 확실한데... 문제는 그 이후다. 왜 고양이 모습이며, 집에는 어떻게 왔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들키진 않았을지 걱정도 좀 됐다. 머리가 복잡하니 우선 사람 모습을 해서 찬물에 샤워라도 해야지 싶었다.
펑!
와 이거 진짜 큰일 났다. 사람 모습으로 변하자마자 선명히 보이는 세상은 내 집이 아님을 증명했고, 고갤 돌려 바라본 옆자리엔 얼굴만 빼꼼 내민 채로 하얀 이불에 둘러싸여 있는 정한 대리님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답답함의 원인, 내 오랜 짝사랑이.
여태껏 이어지는 진동 소리 때문인지 정한 대리님이 뒤척이기 시작했다. 안되는데. 아직 그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베개 맡에 놓인 정한 대리님 폰을 조심히 집어 들어 징하게도 울려대는 전화에 거절 버튼을 눌러버렸다. 발신인은 승처리. 아마 최 팀장님이겠지. 두 분 친하시니까. 멋대로 전화를 끊어서인지 이젠 메시지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왜 전화 안 받냐, 잘 들어갔냐, 아직 서운하냐... 평범하고 다정한 메시지들이 하나씩 쌓이는 걸 보다 결국 방해금지 모드를 눌러 버렸다. 왠지 좀, 부러워서.
씁쓸해진 마음에 몸을 움직일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조용해진 폰만 바라봤다. 하아-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고, 바스락바스락. 이불 스치는 소리가 났다. 어? 이불 스치는, 소리?
“지훈 대리님, 일어났네여?”
진짜 최종 큰일 났다. 자신의 폰을 손에 쥔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모를 직장 동료가 침대 옆자리에 앉아서...
“음, 옷은 바로 옆 협탁 위에 뒀어요. 아님 내 옷 빌려줄까?”
웃통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으니. (하체는 다행히 이불에 덮여 있었다. 불행 중 최고의 다행이었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당황해서 다시 고양이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벌써 두 번째다. 화장실로 도망이라도 쳐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침대 아래로 뛰어내렸다. 화장실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아니 애초에 방문이 닫혀 있어서 이 방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호기로운 점프에 비해 몇 걸음 못 가 멈춘 네 다리는 내가 생각해도 좀 볼품없었다. 순조롭게 큰일을 갱신 중이다. 미치겠네.
뒤죽박죽한 마음이 느껴졌는지 아니면 허망한 뒷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천사 대리님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주며 화장실 위치도 알려주었다. 해장할 거 시켜둘 테니 우선 씻고 나오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듣는 둥 마는 둥 냅다 뛰어버렸다. 고양이인데도 귀 끝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아 쪽팔려.
붉어진 귀는 찬물에도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후드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후드는커녕 어제 입은 셔츠마저 밖에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정한 대리님을 부르기엔 안 그래도 죄송한 일에 부끄러운 일투성이라 망설여졌다. 그래도 왠지 조용한 바깥에 다시 주무시려나 싶어서 아주 살짝 문을 열어 봤더니, 잘 개어져 있는 어제 옷과 편안해 보이는 옷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입고 싶은 대로 입으라는 세심한 배려에 심장은 두근거리고 머리는 복잡해졌다. 그의 다정함은 날 여전히 어지럽게 만들었다.
상의는 정한 대리님의 후드티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하의는 어제 입은 슬랙스를 입고 나갔다. 다소 요상한 조합이어도 어쩔 수 없었다. 식을 줄 모르는 귀를 가리려면 이게 최선이었다. 식탁에는 김이 모락한 순두부찌개와 고추장찌개가 있었다. 메뉴 선정이 참 정한 대리님다워서 이 와중에도 웃음이 났다.
식탁에 마주 앉자마자 어제 오늘 일들에 대한 사과를 건네려고 했지만 정한 대리님께 가로막혔다. 우선 해장부터 하자는 말에 그냥 얌전히 쌀밥을 퍼서 순두부와 함께 입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정적 속에 숟가락질이 좀 반복되는가 싶더니 곧 맞은편에서 배부르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한 대리님은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턱을 괴곤 이쪽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후드티 쓰길 잘했다. 귀가 또 자기주장을 펼치기 시작했으니.
“머리 다 안 마른 거 같은데 모자를 썼네요?”
쿨럭. 잘했단 말 취소. 지금 내 얼굴까지 빨개진 건 절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사레 걸려서다. 진짜로. 정한 대리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내 앞에 놔주셨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선수를 뺏겨버렸다.
“지훈 대리님 귀여운 사람이었구나?”
네? 이번엔 물 마시다 뿜을 뻔했다. 간신히 식도로 넘기긴 했지만 여전히 얼굴은 화끈거렸고 사고는 정지했다. 이런 말을 하는 정한 대리님은 평소보다 훨씬 위험했다. 심장 소리가 귓가에 둥둥 울렸다.
묘(猫)한 사이
이제 보니 지훈 대리님은 마음이 눈에 빤히 보이는 투명한 사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그게 무슨 소리냐고, 겨우 내가 예쁘단 이유로 1년 넘게 나랑 내외한(?) 거냐고 따져 물을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싹 바뀌었다. 보여주는 모든 모습이 굳이 묻지 않아도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겨우’ 같은 가벼운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무뚝뚝하고 평온해 보였던 평소와 다르게 잔뜩 고장 나서는 얼굴도 빨개지고, 안 마른 머리에 후드티 모자까지 쓰고, 바지까지 빌리긴 뭐했는지 자기 슬랙스를 입고. 멸치 없이도 밥은 또 잘 먹었다. 아 좀 귀엽네. 고양이인 모습을 봐서 그런가. 반응이 재밌어서 놀리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자꾸만 기웃거렸다. 그래도 밥 다 먹을 때까지는 참아줘야겠다.
다 먹은 것들을 본인이 정리하겠다는 걸 말리진 않았다. 정리하면서 숨 좀 쉬라고. 분리수거까지 끝내고 구색 맞추기 용 커피를 하나씩 타서 마주 보고 앉았다. 앉자마자 민폐 끼쳐서 죄송했다고 엄청 사과하길래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면 봐주겠다고 했다. 뭘 물어볼지도 모르면서 흔쾌히 알겠다는 모습에 좀 짓궂게 굴어 보고 싶었다.
“나 좋아해요?”
“네?!”
“그랬구나~”
“아니, 그렇다는 게 아니라....”
“ㅋㅋㅋ아알겠어여.”
이 맛에 연하랑 만나는 건가. 아 재밌다.
“그래서 나한테 맨날 고양이 발톱 세웠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난 엄청 서운했는데.”
“아, 그, ㅈ, 죄송해요.”
“아니 모, 괜찮아여. ㅎㅎ”
“...근데 저 고양이인 거, 정한 대리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데, 비밀로 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 어디 가서 소문내고 그러실 분 아닌 거 알지만,”
“비밀, 그거 좋은데요?”
“네?”
1년 넘게 서먹했던 사이가 하루아침에 커다란 비밀을 공유한 사이가 됐다는 게 좀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걸 보니 어쩌면 나도 이 사람과 특별한 사이를 바라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감이 없었다면 서운하지도 신경 쓰이지도 않았을 테고, 멸치 한 봉지를 먹든 세 봉지를 먹든 관심도 없었을 거다. 아직 지훈 대리의 온도에 비하면 미지근한 호감일 테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진 않아서.
“우리 비밀 썸 타볼래요?”
비밀 연애는 좀 이르니까, 비밀 썸. 어떻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눈앞에 이 사람은,
펑!
또 고양이로 변해버렸다. 좋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하다니. 아 이렇게 상습적으로 귀여우면 비밀 연애까지 얼마 안 걸릴 것 같은데, 큰일이네. ㅎㅎ 이제 하얀 고양이 끌어안고 주말을 좀 만끽하다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아직 모르는 게 많으니까. 날 왜 좋아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반쯤 이유를 알 것 같긴 하다. 예쁘다고 말해주긴 했으니까.) 아 맞다. 승철이한테 고맙다고 인사해 줘야겠다. 덕분에 화해했어. 비밀 얘기도 하고. 이제 좀 달라진 사이야, 우리.
묘(猫)한 사이